첩보열전

[세계의 스파이] 해리 톰슨: 일본을 도운 미국인

씨네마진 2018. 12. 6. 17:42
반응형


해리 톰슨(Harry T. Thompson:1908년∼?)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미국인이면서 해군하사관 출신이지만 1930년대 일본 제국을 위해 일한 스파이였다. 더욱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인으로는 처음 '스파이 혐의'를 받아 적발된 사례로 기록돼 있다.


1908년 미국 메릴랜드 농가에서 나고 자란 톰슨은 1934년까지 해군하사관으로 근무했다. 하지만 당시 군에서 퇴역하게 되면서 실직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때 운명과도 같은 마수가 접근한다.


톰슨의 앞에 '타니 씨(Mr Tanni)'라는 한 동양인이 나타났다. '타니 씨'라는 인물은 "일본인으로 스탠포드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톰슨에게 돈을 줄테니 미 해군기지가 있는 샌디에이고를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해 달라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실직 상태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톰슨은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샌페드로로 그를 불러낸 타니 씨는 최초 5백 달러를 쥐어주며 일을 부탁했다.


이에 톰슨은 하사관 시절의 제복을 꺼내 입고 기지를 드나들며 전함의 기밀이나 포격 및 전술과 관련된 군사 정보를 빼내 타니 씨에게 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2백 달러를 추가로 받아 챙기기도 했다.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톰슨에게 접근한 타니 씨라는 인물의 정체는 일본 제국의 해군 무관이었던 미야자키 토시오(宮崎俊男) 소령이었다.


한편 이 무렵 미 해군정보국(ONI)은 미국에 주재하는 일본 유학생들을 잠재적 스파이로 분류해 비밀리에 내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에 따라 ONI는 토시오 소령도 용의선상에 올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중이었다.


그러던 1935년 일본 해군의 무선을 감청하던 ONI의 여성 암호해독요원 아그네스 드리스콜(Agnes M. Driscoll)이 통신상에 자주 등장하는 토미무라(To-mi-mu-ra)라는 암호명을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 일본어는 널리 알려진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드리스콜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수수께끼같은 단어를 일본어에 능통한 학자들에게 가져갔고, 이들은 용어가 일본에서 성(姓)을 의미한다는 추정을 내놨다.


그럼에도 드리스콜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뒤 학자들이 문제의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일본에서는 대개 한자를 뜻으로 바꿔 읽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 '마을'을 뜻하는 촌(村)이라는 단어는 일본식으로는 '무라(むら)'로 읽힌다.


그렇지만 한자의 음을 그대로 읽는 경우도 많으며, 이럴때 '촌(村)'은 '손(SON)'으로 읽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련의 단서들을 조합해보면 결국 토미무라라는 암호는 미국식으로는 토미슨, 즉 톰슨(Thompson)이 된다.


그럼에도 톰슨이라는 명칭은 비교적 미국인에게는 흔한 것이었기 때문에 용의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톰슨은 스파이망 확대를 꾀하며 같은 아파트에 머물고 있던 윌라드 터렌타인(Willard J. Turrentine)에게 자신의 스파이 행각을 취중에 털어놓고 만다. 이 말을 들은 터렌타인이 ONI에 톰슨을 신고했고, ONI의 통보를 받은 FBI가 출동해 그를 1936년 3월 체포했다. 톰슨이 체포되자 그를 사주했던 타니 씨, 미야자키 토시오는 그대로 일본으로 달아나 버렸다.


톰슨은 재판에서 15년형을 선고 받아 맥닐섬 교도소에 복역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작가 앨런 하인드(Alan Hynd)는 1943년 이 사건을 다룬 <동쪽으로부터의 배신: 미국의 일본 스파이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했고, 이 이야기는 1945년 영화화됐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