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열전

[세계의 스파이] 레오폴트 트레퍼: 붉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씨네마진 2018. 12. 16. 20:01
반응형

 

레오폴트 트레퍼(Leopold Trepper: 1904-1982)는 유대인 출신의 공산주의자로 소련 연방군 첩보총국(GRU) 소속의 전설적 스파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서유럽에서 활동한 대규모 스파이망인 붉은 오케스트라(Red Orchestra)의 창설자 겸 핵심고리로 활약했다.

 

190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절 노이말트(현 폴란드 노위타르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트레퍼는, 10대이던 1918년부터 좌파적 성향의 시오니즘(유대민족주의) 운동조직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1924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노동조합 활동가 및 공산당 책임비서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영국군에 맞서면서 체포돼 1929년 추방된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로 활동무대를 옮긴 그는 공산주의 지하조직에서 일하며 유대계 좌파 신문인 디어몰겡과 디어에메스를 각각 출판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1932년 프랑스 내 GRU 스파이망이 적발되면서 책임자들이 체포됐다. 이에 GRU는 현지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트레퍼를 포섭했고, 그는 모스크바와 파리를 잇는 접선책으로 임명되면서 첩보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1938년 7월부터는 캐나다 사업가로 위장해 벨기에 브뤼셀에 거점을 마련하고 나치의 동향을 파악하는 스파이망 구축에 전력을 쏟았다. 당시 그는 프랑스 및 서유럽 각지에 흩어진 스파이망을 연계한 거대한 조직망을 만들게 되는데, 후에 조직의 실체를 감지한 나치의 게슈타포는 이들을 소련의 스파이망이라는 의미에서 '붉은 오케스트라(Red Orchestra: Die Rote Kapelle)로 명명한다.

 

게슈타포는 1940년 후반부터, 붉은 오케스트라의 실체를 확인하고 압베르와 함께 검거에 나서 1942년까지 상당수의 조직원들이 체포됐다. 트레퍼도 같은해 11월 게슈타포에 체포됐는데, 이때 나치는 그를 이중스파이로 활용하고자 회유했다.

 

하지만 1943년 9월 극적으로 탈출해 프랑스 공산당의 지하조직으로 숨어들었고, 이후 연합군이 파리를 탈환할 때까지 나치에 맞섰다. 우여곡절 끝에 종전 무렵인 1945년 1월 모스크바로 돌아왔지만 스탈린의 검으로 활약하던 소련 내무인민위원회(NKVD)는 그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결국 나치의 이중스파이 혐의를 받아 루비얀카(Lubyanka)로 끌려간 트레퍼는 1947년 7월까지 재판을 받아야 했고, 어렵게 사형은 면했지만 15년형을 선고 받아 투옥됐다. 이후 그는 1954년 5월 석방돼 가족을 이끌고 폴란드로 이주해 유대인 문화협회를 이끌었다.

 

이어 1973년 프랑스에 잠시 머문 뒤 이스라엘로 이주해 1982년 1월 예루살렘에서 77세의 일기로 사망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장례식에는 아리엘 샤론(Ariel Sharon) 장군 등 당시 이스라엘 군의 고위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