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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열전

[세계의 스파이] 보리스 구즈: 조르게의 윗선 관리자

씨네마진 2019. 2. 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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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구즈(Boris Gudz: 1902-2006)는 구소련 초창기 KGB의 전신 기관과 연방군정보총국(GRU)을 오가며 활약한 스파이다. 20세기 최고의 스파이로 손꼽히는 리하르트 조르게의 관리자였지만 일선에서 보다는 주로 중간 관리자로 활약했다.


구즈는 러시아 제국 시절인 1902년 우파(Ufa)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우크라이나 혁명 운동에 가담했다가 추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18년 툴라(tula)에 있는 상업학교를 나와 같은 해에 가족과 함께 모스크바로 이주해 광산학교에 입학했다.


이때는 이미 10월 혁명에 따라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은 시기로, 그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볼셰비키에 가입한 뒤 1919년 붉은 군대에 들어가 내전 당시 서부전선 보급국에서 근무했다. 전역 후에는 모스크바 원동기(bike) 학교를 졸업하고 운전사로 일한다.


그러던 1923년 1월 당시 소련의 공안 정보기관이면서 체카(Cheka)에서 개편된 국가정치국(GPU)에 들어가 첩보계에 몸 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GPU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알려진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 구즈가 첩보 업무를 시작한 시기, GPU는 체카에서 시작된 반체제 방첩작전인 '트러스트 작전(Operation Trust)'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기초적 임무를 수행하며 기만 및 방첩 경험을 쌓게 된다.


이런 경력에 힘입어 구즈는 명칭이 바뀐 통합국가정치국(OGPU)에서 1927년 1월부터 방첩과 제5반에 배치돼 국경보안 임무를 맡아 반혁명 무장세력에 대처했다.


이어 1930년 9월 OGPU 국장 보좌관을 거쳐 1932년 동시베리아 위원장으로 임명돼 출세가도에 들어섰다. 이 시기 그는 만주에서 일본을 상대로 특수공작을 벌여 많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성과가 인정돼 1934년 2월에는 대사관 3등 서기관의 위장신분으로 일본에 파견됐다. 여기서 그는 OGPU 주일 지국장을 맡아 활동했다. 특히 이때 일본에는 리하르트 조르게가 앞서 침투해 첩보망을 구축하고 활동에 들어가 있었다.


구즈는 다시 개편된 내무인민위원회(NKVD)에서도 정보 책임자로 조르게의 활동을 관리, 감독했고 이어 귀국 후에는 연방군정보총국(GRU)로 자리를 옮겨 동부담당 부책임자로 조르게 스파이망을 지속, 관리했다.


하지만 1937년 4월 스탈린의 대숙청이 몰아치면서 하루아침에 '인민의 적'으로 낙인 찍혀 지위는 박탈되고 당에서도 제명됐다. 또 GRU에서도 해고되면서 반강제로 첩보계를 떠나야 했다. 이후 1939년 어렵게 당에 복귀했지만, 첩보계에는 발을 들이지 못하고 버스 기사와 수송업체 대표 등으로 말년에 들어갔다.


1960년 이후에는 사회주의 혁명운동과 첩보계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책을 다수 출간했고 영화 고문으로도 활동하다, 2006년 12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중앙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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